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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긴 세월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기다려온
피해자들.
이제 우리나라에는 열 일곱 분이 계시는데요,
경북에는 현재 포항에 한 분이 살아계십니다.
박필근 할머니의 이야기를
포항 박성아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END▶
안온한 가정의 막내딸로
걱정 모르고 지낸 유년시절.
열여섯살이 되던 해,
집 앞 담장 밑에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 다가온 트럭에는
일본 순사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INT▶박필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저기서 살 때, 엄마랑 아버지는 밭에 다 가고.
문간방 밑에 살림 살 때 아닙니까? 문간방 밑에 살림 사니까 트럭이 와서 (저를) 들고 가버렸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주일 넘게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일본이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던
위안소 생활.
버티고 또 버티다 결국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INT▶박필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엄마 보고싶어서, 엄마가 보고싶어서..."
탈출에 실패하자 돌아온 건
끔찍한 고문이었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픈 흔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한 탈출,
◀INT▶박필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아무리 해도 못 살겠더라고요. 이러다 안 되겠
지 싶어 또 안 나왔습니까. 화장실이 이만한 높이에 구멍 이만한 데를 기어 나와 거기로 뛰어 넘어서 벽돌 있는 데, 수챗구멍 이만한 데 거기로 기어 나왔습니다."
경운기 소리를 따라 들어간 집,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부부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에서 포항까지 보름 넘게 걸어
겨우 다다른 고향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INT▶박필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내가) 어디 가서 어떻게 죽었는가 싶어서 (어머니가) 매일 저녁 때 울고 엄마도 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나 때문에..."
그 이후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습니다.
남편과 네 딸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남은 두 자녀를 위해 살아온 삶.
몇십년이 지나서야 고통스러웠던 세월을
자식들에게 털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INT▶남명식/ 박필근 할머니 아들
"(제가) 장성하고 난 뒤에 내가 일본에 가서 호되게 당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일본놈한테 호되게 당했다... 일본놈 아주 매운 놈들이다. .."
80여년 전의 아픈 기억,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는 일본...
지난 억울한 세월에 빼앗긴 청춘에 대해
이제는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INT▶박필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만약에 그때, 16살에 (일본에) 안 갔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안 갔으면 그때 다른 데 시집 가서 잘 살았지 뭐. 너무 억울해서 그러지 내가 그래..."
MBC 뉴스 박성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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