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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야학은 항일운동의 거점이었습니다.
울산시교육청이 광복절을 앞두고 조사 했더니
일제강점기인 1929년 울산에서만 야학이
100여 개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내일 광복절을 맞아 우리의 독립정신을
야학에서 찾아봤습니다.
서하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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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중구 북정동의 삼일회관.
지난 1921년 울산청년회가 사용했는데
이 때 운영된 야학은 학생 수가 2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CG>야학은 3.1운동 이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울산시 교육청이 조사한 결과
1929년 울산지역 야학은 100곳을 넘습니다.
당시 울산면과 언양면, 삼남면에
유독 야학이 많았습니다.
◀INT▶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각 면마다 청년회가 생겨요. 병년 청년회, 언양 청년회, 웅촌 청년회가 막 생기는데, 청년회에서 야학을 주도하게 됩니다.
s\/u>일제강점기 울산에서 운영된 야학은
청년들 그 가운데서도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야학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며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자,
일제는 야학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CG>1931년 10월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언양농민조합이 운영하는 야학이 돌연
폐쇄명령을 당했고, 울산경찰서 고등계주임은
야학교 생도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지시가 있어 폐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1929년 보성학교를 폐쇄를 시작으로
무려 80여개에 달하는 야학이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INT▶이현오 교사\/울산교육독립운동연구회장
농민이나 노동자들에게 사상, 의식을 심어줘 독립을 추구하는 행동이 울산지역의 야학이 더 심하다 이런 식으로 조사가 된 자료가 있더라고요.
울산시교육청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거점이 된 야학을 울산의 독립운동 역사체험 지도에
포함하고 울산 야학 정신을 후세에 기리기로
했습니다.
mbc뉴스 서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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