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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현대중공업과 함께 해온 울산시민들은
세계적인 조선소가 위치한 도시라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동구지역 주민들의 허탈감은 더 큰데요,
최지호 기자가 동구민들을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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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에서 나고 자란 이재용 씨.
아버지가 조선소에 다니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던 어린 시절의 웃지 못할 기억을 한 가지
떠올립니다.
자가용이 귀했던 그때,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버지의 차를 습격한 의문의
페인트 가루를 닦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INT▶ 이재용
'(페인트 가루를) 항상 벗겨 내고 비 오는 날에는 윈도브러쉬 닦아도 선이 그여 있잖아요. (그 당시에는) 뭐 어쩔 수 없었어요. (현대중공업과) 같이 살아야 되니까 참았었죠.'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집계한 창사이래
산재사고 사망자는 410여 명.
조선소에서 40년 가까이 일했다는 김병제 씨는
안전시설조차 변변치 않던 초창기 선박 건조
현장의 아찔함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INT▶ 김병제
'그때는 안전에 대해 좀 소홀했거든요. 높은 곳에 올라가도 벨트를 안 차고 일한 사람이 많았었어요.'
(S\/U) 가뜩이나 조선업 침체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동구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하소연합니다.
◀INT▶ 김복녀
'괴롭죠. (본사가 서울로) 간다 하면 지금도 집이 많이 비어 있는데 다 떠나면 얼마나 비겠어요. 살기가 너무 힘들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울산 동구에서만 내리 다섯 번 당선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 대한 여론도
이제는 애정보다 원망이 더 큽니다.
동구민들은 현대중공업이 동구, 동구가 곧
현대중공업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INT▶ 추견호
'노동자가 있어 (현대중공업이)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가 됐고 노동자와 함께 한 것이지 (정몽준 씨) 혼자 할 수 없잖아요.'
탈울산을 시도하는 현대중공업과
이를 저지하는 노조의 대립을 바라보는
동구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최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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