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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3- 산업화에 밀린 이주민

조창래 기자 입력 2018-04-03 20:20:00 조회수 136

◀ANC▶
창사특집 연속기획, 세번째 순서입니다.

오늘은 공단 조성과 공해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강제 이주의 아픈 역사를
조명합니다.

조창래 기자입니다.

◀END▶
◀VCR▶

울산이 정부에 의해 공업센터로 지정된
1962년 이후 남구 고사동을 시작으로 주민
이주가 본격화 됐습니다.

마을이 공장 부지에 포함되면서 토박이
주민들은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 없이 정든
마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온산공단이 들어선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산너머 덕신지역에 조성된 이주민 마을로
옮겨 갔습니다.

◀INT▶이상실\/ 공해 이주민
\"이 터가 전부 공단으로 형성됨으로 해서 사실 우리가 디뎠던 그 땅이나 흙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고향을 저버린 철거민들 입니다.\"

이후 공해문제가 본격화 되자 정부는
온산공단과 울산지역 환경오염지구 주민
2만7천여 명을 추가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행정대집행으로 생활 터전을 잃는
장면도 곳곳에서 연출됐습니다.

◀INT▶한삼건 교수\/울산대학교
\"그런 문제가 생긴다는 걸 예상할 수도 있었는데 울산이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되다 보니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예측을 못했던거죠. 그 상처와 피해를 우리가 고스란히 받았다고 봅니다.\"

이주민을 위해서는 새로운 주거단지가
조성됐습니다.

당시 논밭이던 남구 옥동과 무거동,
중구 태화동과 다운동 등이 이주민 택지로
개발됐습니다.

댐 건설로 인해 사라진 마을도 있습니다.

회야댐이 건설되면서 지금은 물 속에 잠긴
청량면 신리마을의 당시 모습입니다.

도시가 커지고 물 수요가 급증하며 사연댐과 대암댐, 대곡댐 등이 잇따라 들어섰고
토착민들은 실향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울산이 대한민국 7대 도시로 성장한
그 이면에는 고향을 떠나보낸 이들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MBC뉴스 조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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