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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잡이의 추억

서하경 기자 입력 2009-06-19 00:00:00 조회수 23

◀ANC▶
우리나라의 고래잡이는 멀리 선사시대부터
시작돼 197,80년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기까지
울산 장생포는 국대 최대의 고래잡이
전진기지였습니다.

서하경 기자입니다.

◀END▶
◀VCR▶
선사시대 바위 그림으로 국보 285호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

김수염 고래와 귀신고래, 작살에 맞은
고래 등 고래와 관련된 장면 58점이 생생히
표현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울산의 고래잡이 역사는 1899년 남구 장생포
항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러시아가 장생포에 고래해체장을 세우고,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장생포를 포경 전진기지로 삼아 본격적인
고래잡이를 시작합니다.

1946년 4월 16일 첫 포경에 나선 배는
참고래 72마리를 잡는 성과를 이뤘고,
이 날은 한국 포경기념일로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길이가 2,30미터 넘는 고래를
해체할 때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고,

포경선이 2,30척씩 드나들며 한해 천마리
이상의 고래를 잡으면서 장생포는 일약
고래도시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INT▶김상복(84세,전 포경선 선장)

선단에서 거친 물살을 가르며
고래를 쫓던 포수는 그 때를 생각만해도
신이 납니다.

◀INT▶추소식 (68세, 전 포수)

포경산업으로 1세기 영화를 누리는 것도
잠시, 1986년 상업포경이 중단되면서
장생포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s\/u)그러나 이 곳 장생포에 복원 전시된
포경선 제 6진양호는 동해 앞바다를 누볐던
고래잡이 명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서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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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경
서하경 sailor@usmbc.co.kr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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