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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보내드린 <한삼건의 울산 100년>이 오늘로써 29번째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동영상과 사진 등 근대 울산을 중심으로 귀중한 자료와 함께 현장을 찾아보고 변화와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울산 100년>의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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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부터 만 7개월에 걸쳐서 과거 1세기 동안의 울산 도시 변천과정을 짚어 보았습니다.
기획의도는 백년이란 시간 동안에 일어난 변화 속에서 울산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필요한 교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20세기 전반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적으로 병합된 식민지시기였습니다.
그때 울산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사연을 담아 보내던 많은 사진엽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네들 손에 의해 사라졌던 우리 옛 모습을 전해 줍니다.
1930년대의 울산은 역동적이었습니다. 삼산비행장이 개장되고, 읍승격이 있었으며, 울산교가 건설되고, 동해남부선이 개통되었습니다.
1940년대가 되면 울산에서는 일본제국의 전쟁수행을 위해 인구 50만 공업도시 개발이 추진됩니다.
해방 후 17년째 되던 1962년 2월 3일, 칼바람이 매섭던 남구 매암동 흰등산에서는 우리 겨레의 4천년 빈곤을 몰아낼 큰 선언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울산을 인구 50만 공업도시로 개발하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10대 중고등학생은 벌써 6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INT▶오홍자(64세.당시 울산여고 합창단)
공업센터 선언 이후 47년 세월 동안 울산이 대한민국의 경제기적을 선도했기에
2월 3일은 대한민국의 국민적 기념일이 되어야 하고, 그 장소는 길이 보전되어야 합니다.
◀S\/U▶ 반세기전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렸던 현장입니다.
국가의 번영을 약속했던 이 장소는 이처럼 초라하게 남아있습니다.
미래를 비쳐볼 수 있는 유일한 거울은 과거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것을 재평가하고 남기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삼건의 울산 백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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