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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건의 울산 100년-이주민의 애환

입력 2008-12-21 00:00:00 조회수 53

◀ANC▶
울산에 공단건설이 본격화되면서 그
이면에는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애환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한삼건의 울산 100년>, 오늘은 공단건설과
함께 곳곳에서 이뤄졌던 주민이주에 대한
이야깁니다.
◀END▶

◀VCR▶
◀S\/U▶ 1963년부터 1989년까지 만 26년간 옛 사립 대현중학교가 있던 부곡동입니다.

이곳은 정유공장이 건설되면서 고사동에 있던 중학교와 주민들이 이주하여 새 터전을 일군 곳이지만, 1980년대 말 공해주민 이주사업으로 두 번째 철거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공단건설에 따른 주민 이주는 고사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2년 겨울, 학교가 두 곳이나 있던 고사동 마을은 통째로 부곡동으로 옮겨졌습니다.

◀INT▶박채은(남구 향토사연구소장)

이 그림은 소달구지에 가재도구를 싣고 떠나는 주민의 모습입니다. 1963년 매암동 제3비료 건설현장입니다.

갑작스런 철거 이주와 보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런 멱살잡이도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INT▶박채은(남구 향토사연구소장)

공해문제가 크게 대두되자 1985년 공해이주대책사업이 시작되면서 공단건설이 아닌 공해를 피해서 떠나는 이주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공해이주사업으로 마을을 떠나게 된 남구 성암동 주민들이 천도제를 지내는 모습입니다.

철거전의 성암동 선수마을과 용잠마을입니다.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거주하던 마을과 문전옥답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있던 당월리 모습입니다. 1980년부터 동해펄프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1999년에 완전 철거된 산암리 달포마을에는 비철원료를 나르는 벨트컨베이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복어로 유명하던 우봉리도 지금은 완전히 철거되었고, 어민이 없던 포구마을로 유명했던 방도리의 명물이었던 장터와 춘도초등학교도 모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울산국가공단의 오늘의 번영 뒤에는 수많은 철거 이주민들의 아픔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런 마을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삼건의 울산 백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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