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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울산초등학교는 조선시대 지방 왕궁이라고 할 수 있는 객사가 있던 자립니다.
지금까지 울산 객사의 사진 몇 장이 일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만 오늘 <한삼건의 울산 100년>에서는 객사 정청 학성관과 객사 철거 모습 등이 담긴 귀한 사진이 입수돼 최초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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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전국의 모든 고을 중심에 객사가 서 있었습니다.
객사는 왕권의 상징이었으니, 각 지방에 건립된 작은 왕궁이었습니다.
따라서 객사는 입지나 건물규모 면에서 각 고을의 으뜸이었는데, 중심건물의 이름에는 그 고을의 별칭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울산은 학성관, 경주는 동경관 같은 식입니다.
◀INT▶양상현 교수(울산대 역사문화학부)
울산객사 학성관의 위치는 현재의 중구 울산초등학교 자리입니다.
사진은 학교 정문 위치에 서 있던 객사문루인데, <태화루>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사진에는 관리 같아 보이는 사람 여럿과 가마가 보입니다. 1911년경의 사진으로 짐작됩니다.
문루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면 <학성공립보통학교>라는 현판이 붙은 <제승문>이 보입니다. 객사중문입니다.
중문을 지나면 불이 나서 1835년에 새로 지은 객사 정청이 보입니다. 길이가 50m나 되는 위엄있는 건물입니다.
객사는 마당이 넓고 건물이 크다는 이유로 전국적으로 학교로 사용된 곳이 많습니다.
◀INT▶양상현 교수(울산대 역사문화학부)
이 사진들을 보면, 객사 건물과 객사 앞 도로가 일제강점기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문루 앞 날개채가 사라지고, 일본식 교문 기둥이 섭니다. 문루 2층이 변형되고, 이어서 중문이 철거됩니다.
1934년이 되면 객사 정청건물은 부족한 교실 증축 때문에 완전히 철거됩니다.
5일장이 열리던 객사앞 대로는 일제강점기 동안 하나 둘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조선의 상징에서 완연한 일본풍 거리로 모습을 바꿉니다.
◀S\/U▶ 500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던 울산객사 학성관은 흔적이 없습니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 지금 객사 부지는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합니다.
한삼건의 울산 백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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