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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남구 용연동 개운포는 신라 헌강왕이 처용을 만난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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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그런데 헌강왕이 개운포에 올때 뱃길을 이용했다는 가설이 제기돼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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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울산탐구 김잠출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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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울산시 기념물 4호 개운포 처용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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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천백여년 전 헌강왕이 처용을 만나 처용가와 처용무 그리고 최근의 뮤지컬 처용을 낳았습니다.
<\/P>(삼국유사 DVE)
<\/P>헌강왕이 짙은 구름과 안개로 어려움에 빠져 동해용의 도움으로 안개를 걷어내 개운포라 부르고 망해사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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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헌강왕이 처용을 만난 개운포 현장입니다, 이 개운포 바로 앞에는 처용암이 있고 바다 맞은편에는 처용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P>(시지-1)
<\/P>하지만 처용의 정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호족의 아들 설과 아라비아 상인 설, 그리고 개운포에서 잡혀온 인질 설등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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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런 가운데 헌강왕이 감은사나 형산강 하구에서 뱃길을 이용해 개운포로 왔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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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당시 경주에 인도나 중동 상인들이 많았고 일본 당나라와도 뱃길로 교류했기 때문에 울산과의 뱃길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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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또 조선중기 경상도관찰사 홍성민이 개운포의 경상좌수영에 순시때 쓴 시도 있습니다.
<\/P>(시지-2)
<\/P>"옛날 용주가 머물던 개운포,이제 수군절도사의 배가 머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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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용주를 왕실 전용선으로 본다면 배가 정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삽화)
<\/P>문무왕때부터 신라말까지 있었던 선박을 관리한 선부란 직제도 가설을 뒷받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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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감은사 앞바다나 형산강 포구에서 개운포까지의 뱃길 가설,전문가들의 검증이 필요합니다.울산탐구 김잠출입니다.◀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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