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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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국전쟁 당시, 공비와 내통 했다는 이유로
<\/P>억울하게 희생된 지리산 양민들의 넋을 달래는 추모공원이 비극의 현장인
<\/P>지리산 자락에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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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지종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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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VCR▶
<\/P>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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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는 지리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비 토벌작전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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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 과정에서 산청과 함양 등 지리산 양민
<\/P>700여명이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P>국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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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른바,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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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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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디졸브
<\/P> (S.U)
<\/P> 산청.함양사건이 발생한지 53년 여만에
<\/P>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합동묘역과
<\/P>추모공원이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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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0여년 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들에겐
<\/P>그나마 위안입니다.
<\/P> ◀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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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비극의 현장에 세워진 합동묘역 추모공원은
<\/P>2만여평의 부지위에 희생자묘역과 위패 봉안각,
<\/P>위령탑등이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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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하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문제는 아직도
<\/P>해결되지 못한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P> ◀INT▶ 유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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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분단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비극의 현장은 아직도 지리산의
<\/P>아픔으로 남아 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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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BC뉴스 지종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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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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