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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조선시대 3포 개항지의 하나인 염포는 국가가 독점판매했던 소금이 번성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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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지금은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들어서서 그 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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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울산재발견, 오늘은 국제무역항으로써의 염포를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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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홍상순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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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염포는 부산포와 진해 내이포와 이어 일본에 개방됐던 조선시대 3대 무역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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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무역이 번성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P>당시 군사시설인 수군 만호진이 설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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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T▶문모근 사무국장
<\/P>북구문화원 준비위원회
<\/P>"국제무역항으로써의 가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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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90년에는 염포성이 축조됐지만 지금은 성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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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당시 염포가 개항장으로 선택된 것은 소금 鹽자에서 알 수 있듯이 소금 나는 갯가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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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소금은 달천 철과 더불어 국가가 독점판매했던
<\/P>귀중품으로 당시 울산은 무역을 할 토대를
<\/P>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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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T▶차용걸교수\/충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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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지난 68년 현대자동차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들어서기 전까지 염포에서 소금 생산은
<\/P>계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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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삼한시대 진한 12개국의 하나인 염혜국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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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3년 염포는 울산본항으로 이름은 바꿨지만
<\/P>무역은 계속 번성해 울산이 우리나라 산업수도라는 명칭을 얻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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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염포는 예나 지금이나 수출 전전기지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P>mbc뉴스 홍상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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